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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초기 ‘주부’ 개념의 도입 양상— 1900∼1910년대를 중심으로 —

저자
이영아
서지
개념과 소통
발간일
2018
조회수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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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주부’ 개념이 어떻게 한국에 도입되고 확산되어 갔으며, 그것이 여성들의 삶과 글쓰기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주부’ 개념 탄생 조건을 검토한 뒤, 한국에서의 ‘주부’ 개념이 처음 도입된양상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주부 개념이 탄생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은 여성교육의 필요성 대두, 가정학의 등장, 여성을 위한 신문·잡지·소설 속 ‘주부’ 만들기 콘텐츠, 근대적 가족관계로의 재편이다. 주부의 개념도 근대화가 먼저 진행된 국가에서부터 등장했다. 서구와 일본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자본주의 산업화·근대화의 과정에서 성별 역할 분담, 공사 영역의 분리가 일어났고이때 탄생한 것이 ‘주부’라는 새로운 역할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처음으로 설립된 여학교를 통해 교육을 받고 가정학을 배웠으며, 부부 중심의 핵가족으로의변화과정에 놓여 있던 그들은 신문·잡지·문학 등을 통해 주부로서의 품성과능력을 함양하였다. 조선에서는 1900년을 전후하여 처음으로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여성들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가 형성되고, 그 배워야 할 ‘무엇’의 제1순위로 가정학이 지목되며, 여성을 위한 신문·잡지·소설들을 통해 주부에게 필요한 정보·덕목 등이 확산되고 「민적법」에 의해가족단위가 보다 분절되기 시작하면서 ‘주부’가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00년대까지 새로운 성역할 담론을 주도한 인물은 구미나 일본에서 근대학문을 배운남성 지식인이었다. 이로 인해 1900년대 주부의 개념은 근대적 면모를 충분히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관념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10년대에 들어서면 학교에 다녀 본 여성들이 존재하면서, ‘주부’ 개념이 가정학 교육을 바탕으로 여성들에 의해 보다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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