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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거주이동과 혈연적 연대의 관계 -단성지역 합천이씨 가계들의 호적과 족보 분석을 통해-

저자
손병규
서지
한국사학보
발간일
2020
조회수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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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마다 작성되는 호적대장의 ‘행정리’는 가족이 실제로 거주하는 복수의 ‘마을’로 편성된다. 호구 등록이 가족의 형성과 거주이동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행정리를 넘어서는 호구 이동을 연속된 장기적 관찰로 추적하여 현실적인 거주와 이동을 추정할 수는 있다. 조선후기 단성지역의 합천이씨 가족들은 여러 행정리에 할거하고 있었다. 행정리마다 등재된 호구는 대체로 신분이나 가계를 달리하며, 행정리에 지속적으로 거주하거나 행정리를 넘어서서 이동하는 경향에도 차이가 있었다. 18~19세기를 통해 동일 행정리에 지속적으로 등재되는 경우는 점차 감소하는 반면, 호의 대표자가 장남과 계자인 호의 비율은 높아진다. 거주이동이 심화되고 계자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반영한다. 계자와 장남이 출신지 행정리에 지속적으로 등재되는 비율은 양반과 향리의 특정가계에서만 두드러진다. 단성현의 합천이씨 가족들은 18세기를 통해 세거지의 형성을 강하게 열망해왔지만, 타지역으로의 이동도 빈번했다. 19세기에는 양반들도 몇몇 직계가족을 제외하고 한 지역에서 세대를 이어 장기적으로 거주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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