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成豐世(1572~1650)를 입전한 작품들을 비교하여 ‘효자전이 어떻게 개인 혹은 집단의 지향에 맞는 효자상을 만들어내고 보급하는가’라는 문제를 고찰해 보았다.
성풍세는 肅宗朝에 旌閭를 받은 星州의 효자로, 성풍세를 입전한 효자전이 18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총 3편 지어졌다. 가장 먼저 전을 지은 것은 같은 가문의 成晩徵이다. 성만징의 전에 나타난 효자 성풍세는 분명 효성이 지극한 효자이기는 하지만, 여느 효자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풍세가 李源祚의 전과 成鱗鎬의 전을 거치면서 점차 비범하고 대단한 효자로 변모해 간다. 이원조는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성풍세의 신이한 효행들을 전으로 기록하여, 사실로 승인한다. 이 과정에서 이원조는 신이한 효행이 진실인지 여부에 상관하지 않고, 孝感의 典範으로 여겨지던 여러 고사를 변주하여 효자 성풍세의 異蹟을 명문화한다. 이처럼 이원조에 의해 비범한 효자로 승인 받은 성풍세는 성인호의 전에 의해 다시 한 번 변모한다. 성인호는 성풍세의 후손으로서 성풍세의 행적 중 특히 ‘忠孝兩全’을 부각시킬 수 있는 군역 수행 당시의 효행을 집중적으로 서술했다. 성인호의 전에 의해 성풍세는 당시의 병마절도사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충과 효를 지극히 겸비한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또한 성인호의 전에 의해 성풍세가 충효를 모두 수행한 행적은 사실로 인정받아 훗날에 편찬된 읍지에도 수록되었다.
효자 성풍세는 이원조와 성인호의 전에 의해서 비범하고도 충효를 겸비한 인물로 확립되었다. ‘전’이라는 문자 기록에 의해 성풍세의 효행이 사실로 인정받은 것이다. 전이라는 양식을 통해 효자의 모습은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형상화되고 각종 효행들이 사실로 승인되며, 이러한 효자의 모습과 효행이 후대에 계속 진실로서 전해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조선 사회에서 효자전이 수행한 역할은 실로 작지 않다고 할 만하다.
성풍세는 肅宗朝에 旌閭를 받은 星州의 효자로, 성풍세를 입전한 효자전이 18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총 3편 지어졌다. 가장 먼저 전을 지은 것은 같은 가문의 成晩徵이다. 성만징의 전에 나타난 효자 성풍세는 분명 효성이 지극한 효자이기는 하지만, 여느 효자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풍세가 李源祚의 전과 成鱗鎬의 전을 거치면서 점차 비범하고 대단한 효자로 변모해 간다. 이원조는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성풍세의 신이한 효행들을 전으로 기록하여, 사실로 승인한다. 이 과정에서 이원조는 신이한 효행이 진실인지 여부에 상관하지 않고, 孝感의 典範으로 여겨지던 여러 고사를 변주하여 효자 성풍세의 異蹟을 명문화한다. 이처럼 이원조에 의해 비범한 효자로 승인 받은 성풍세는 성인호의 전에 의해 다시 한 번 변모한다. 성인호는 성풍세의 후손으로서 성풍세의 행적 중 특히 ‘忠孝兩全’을 부각시킬 수 있는 군역 수행 당시의 효행을 집중적으로 서술했다. 성인호의 전에 의해 성풍세는 당시의 병마절도사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충과 효를 지극히 겸비한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또한 성인호의 전에 의해 성풍세가 충효를 모두 수행한 행적은 사실로 인정받아 훗날에 편찬된 읍지에도 수록되었다.
효자 성풍세는 이원조와 성인호의 전에 의해서 비범하고도 충효를 겸비한 인물로 확립되었다. ‘전’이라는 문자 기록에 의해 성풍세의 효행이 사실로 인정받은 것이다. 전이라는 양식을 통해 효자의 모습은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형상화되고 각종 효행들이 사실로 승인되며, 이러한 효자의 모습과 효행이 후대에 계속 진실로서 전해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조선 사회에서 효자전이 수행한 역할은 실로 작지 않다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