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효과적인 표준 치료가 확립되면서 HIV는 더 이상 감염 그 자체로 사 망에 이르게 하는 질환이 아니라 약물을 통해 조절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다. 이 글에 서 나는 HIV 질환의 만성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중대한 삶의 위기로 경험할 수밖에 없 었던 사람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에서 생명 정치가 작동하는 주요한 방식을 규 명한다. HIV 감염 이후 신체적 손상과 장기 입원을 경험한 감염인들과 이들을 보살피 게 된 가족 및 돌봄자의 경험을 서사화하고, 이들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삶과 죽음의 기 이한 병치를 살펴본다. 여기서 퀴어성(queerness)은 성 정체성 및 성적 표현의 지표를 한정적으로 의미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퀴어성은 다종의 비규범성을 폭넓게 의미하며, 특히 생명 정치의 장에서 신체의 생물학적 지속과 사회적 죽음의 기이한 결합이 야기하 는 비인간화를 규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HIV 감염이 퀴어 존재의 출 현을 야기하고 삶과 죽음의 공시적 기생을 강제하는 양상은 치료 영역에서의 차별과 배 제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친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하며, 장기 요양의 시장화와 시설화를 통해서 공고화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인간다운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에도 불구 하고 돌봄의 상호성에 기반을 둔 퀴어 친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포착하고, 이러한 실 천이 담지하고 있는 관계적 힘의 창발성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