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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貞節 의식의 강화와 교화서 편찬

저자
오혜진
서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발간일
2020
조회수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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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전기 여성에게 貞節 의식이 강화된 목적과 과정을 살펴보고, 교화서의 보급을 통해 貞節 의식을 비롯한 유교적 여성관이 조선 시대 여성에 게 어떻게 내면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貞節’ 의식이란 육체적·정신적 순결을 의미하는 단어로 각 공간과 시대 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었다. 조선 이전의 貞節 의식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배우자에 대해 가지는 쌍방적 의무였다. 조선 시대의 貞節도 초기에는 쌍방적 의무 형태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貞節의 대상은 사회적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여성에게 한정되어 적용되었다.
조선은 宗法을 통해 가족윤리·질서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때 형성된 가부장적 가족문화는 여성이 제사·상속 등에서 배제되는 원인이 되었다. 가부장적 문화가 정착되는 데에는 혼인제도의 일부인 親迎도 영향을 미쳤다. 親迎은 陰陽論을 남성 중심적인 시각으로 해석하여 혼인 후에 남성이 여성의 집에서 머물던 전통적인 가족 질서를 해체했다.
이외에도 여성의 재혼을 막는 재가금지법과 이성간 접촉을 막는 내외법이 법적으로 마련되었다. 여성의 행동을 법적·제도적 규제로서 통제한 것은 건국 후 불안정한 사회의 질서를 禮에 맞춰 빠르게 세우고자 했던 조선전기의 특성과도 연관할 수 있다.
조선이 사회적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貞節을 강요하기보다는 유교적 여성관을 내면화하는 방안이 모색되었다. 이를 위해 조선전기에는 국가 차원에서 교화서를 편찬·보급하였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전기 교화서는小學·三綱行實圖·內訓이다. 위 세 개의 책은 모두 유교에서 제시하는 올바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 관해서는 조금씩 내용의 차이를 보이지만, 대부분 夫婦有別에 따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온순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올바른 여성관을 내면화한다는 것은 여성의 자발적 의지와 유교 윤리를 이해하는 수준 높은 교육을 동반해야 한다는 데에 일부 교육적 의미가 있다. 더불어 조선전기 貞節 의식의 강화와 교화서 편찬은 유교적 사회적 질서가 정착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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