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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가족의 소망과 좌절

저자
김인호
서지
한국중세사학회
발간일
2021
조회수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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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가족의 소망은 구성원 개인의 바람이면서, 가족이나 친족이란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 사실 가족에 대한 소망은 시대적으로 차이가 나기 어려우며, 실현하는 방식에서 사회적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 고려시대 개인은 가족이나 가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가졌으며, 그런 점에서 상호 연대성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개인의 사회적 활동에 가문과 가족의 영향력은 상당하였으며, 이 점은 특히 상류층에서 중요하였다. 사회적 출세에는 門蔭이 작용하였고, 범죄에는 연좌가 가족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점은 가족이나 가문 공동체가 개인과 동일시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연좌는 고려말에 비판을 받았으며, 공양왕대 이에 대한 폐지 주장이 나왔다. 가족의 소망은 개인의 욕망과 관련이 깊다. 개인의 욕망은 주로 장수, 사회적 부, 편안함, 천명을 누리고 죽는 것, 덕을 좋아하는 일 등과 같이 「홍범」에 제시된 것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가족에게 연장되면, 가족의 안녕과 사회적 확장으로 변화할 것이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중요한 소망이었다. 이를 위해 종교나 신앙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 도교, 圖讖, 민간 신앙이 그 수단이었다. 아울러 가족에게는 家業 계승이란 관념이 존재하였으며, 이것은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진출 내지 출세와 관련이 깊다. 가업 계승 관념은 귀족사회가 형성되면서 사회적으로 확산하였다. 점차 가족 구성원은 자신의 문학 능력을 발휘하고, 출세해서 명예를 얻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이와 같은 가족 구성원이 많아지면 가문의 명예가 올라가게 되었다. 또한 왕실과의 혼인 역시 가문의 위상을 높이는 전형적 방식이다. 가업 계승은 남성의 일이었다. 이를 위해 성장하던 아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항상 있었다. 따라서 가문을 일으킬 인재라는 이야기는 열전이나 묘지명에 상투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가족의 소망이 항상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무엇보다 가족의 안녕과 유지는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나 해체로 좌절되기 쉬웠다. 그 중 가족의 죽음은 가족 구성원에게 정신적 압박과 커다란 좌절감을 주었다. 이규보의 경우는 승려가 되었던 어린 아들의 죽음에 애통해하면서, 승려였기 때문에 극락왕생했을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였다. 특히 평소 질병이 없다가 갑작스러운 사망은 가족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다만 사회적으로 악행을 했던 인물의 경우에는 갑작스러운 죽임이 자기 행위로 인한 천벌로 인식하였다. 가족의 죽음은 이외에도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이나 전쟁의 경우에도 많이 발생하였다. 전쟁은 가족의 해체를 빈번하게 불러왔다. 몽골 전쟁기에 많은 고려인들은 전쟁포로나 살해 등으로 가족 해체를 겪어야 했다. 김천은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몽골로 끌려갔던 가족을 되찾아 왔던 운이 좋은 사례였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서 가족 소망이 좌절하는 경우는 구성원에 대한 기대감을 배신하는 것에서 생겼다. 고려말 이인복은 아우들이 나라와 가문을 망칠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결국 반역죄에 연루가 되면 가족은 유지되지 못하고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다. 가족 간의 불화는 서로에 대한 소망을 저버리는 일이었다. 이 불화는 토지와 노비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또는 감정적 대결로 인해 흔히 벌어졌다. 이러한 가족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습이었다. 가족 내부의 불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속력 내지 유대감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의 덕성에서 나오기도 하였고, 그로 인해 사회적 효의 실천과 표창이 이루어졌다. 물론 효의 실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려후기 가족과 가문 내부의 균열이 심화될수록, 효에 대한 사회적 효용 가치가 더욱 필요하였다. 가족이나 친족을 모아 잔치를 열고, 서로 간의 만남으로 유대감을 높이는 방법이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친족 간의 契 모임으로 확산하였다. 결국 고려시대인의 소박한 소망은 사회적 출세나 경제적 부 이상으로 자식들의 무탈한 성장, 집안 어른에 대한 공경이나 사랑의 실현 등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상류층을 제외하고 대부분 가족이 꿈꿀 수 있는 소박한 소망이었다. 이 소망은 고려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소망의 실현은 가족이나 개인, 그리고 사회적 실현방식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이 점은 보다 다른 탐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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