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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서』에 나타난 중국 전통시대의 여성담론과 그 사회·정치적 의미

저자
박동인
서지
율곡한연구
발간일
2019
조회수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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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여사서』를 통해 중국 전통시대의 여성관과 그 사회·정치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것도 특히 여훈서 최초의 여성 작자인 반소의 『여계』가 이후 여훈서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반소는 유향이 그의 『열녀전』 속에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서한 금문경학자들의 이상적인 여성관을 거의 그대로 『여계』에 수용함과 동시에 그것을 강화했다. 그 여성관은 전국말에서부터 진·한대에 걸쳐 봉건 전제군주들이 그들의 미약한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요청한 도그마들이었다. 황제-향장-가장이라는 일원화된 통치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구성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반소가 그것을 『여계』에 받아들이면서 그 논리가 그 이후에 저작된 『여논어』와 『내훈』 및 『여범첩록』에도 그대로 관철됨을 확인했다. 그 각각의 여훈서를 읽는 대상이나 저작된 시대상황과 그 필요에 따라 특정부분이 강화되거나 첨가되기는 하지만 그 기본 틀에서는 일치했던 것이다. 그 모습은 다음 네 가지 봉건 여성의 공통된 중심사상에서 그러했다. 첫째는 ‘봉건 여성의 정체성’ 부분인데, 반소가 기존의 건(乾)-양(陽)-남(男)-강(剛), 곤(坤)-음(陰)-녀(女)-유(柔)의 관점을 그녀의 『여계』에 받아들임으로써 그 이후의 세 여훈서에서도 결국 여성의 존재를 남성 아래에 두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아내는 남편을 하늘같이 섬긴다’는 남존여비사상과 남편은 바깥일, 여자는 가정 내의 일을 한다는 관념 및 여자는 제 마음대로 일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둘째는 ‘봉건 여성의 미덕과 태도’ 부분인데, 바로 여성의 정체성이 이렇게 규정됨으로써 여성이 지녀야 할 미덕과 태도를 『여사서』 전체가 그것에 맞게 구성하였음을 발견했다. 여성의 상징인 ‘음’의 특성에 따라 겸양과 공경과 순종 등의 미덕을 가지고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앞세우는 등의 태도를 견지하도록 된 것이다. 셋째는 ‘봉건 여성의 노동과 역할’ 부분인데, 여성의 정체성이 여성의 일을 가정사로 한정하면서 네 여훈서 모두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토대로 음식을 만들고 옷을 짓고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돕는 것이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독자가 누구냐와 그것이 지어진 시대상황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다소 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넷째는 ‘봉건 여성의 윤리’ 부분인데, 반소가 유향 『열녀전』의 이상적 여성윤리, 즉 ‘정조’와 ‘일부종사’와 ‘삼종지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이 이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발견했다. 물론 각 여훈서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정절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와 황제의 정절 선양 및 남성의 취향에 의해 그 무늬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봉건 여성의 정체성이나 미덕과 태도, 그리고 노동과 역할 및 여성윤리도 여성 자신들에 의해 결정되었다기보다 남성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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