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단정보 바로가기
전체메뉴보기

전체메뉴보기

전체메뉴닫기
아카이브

논문

  • 홈
  • 아카이브
  • 인문DB
  • 학술연구
  • 논문
  •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구글 플러스 공유하기
  • 카카오 스토리 공유하기

경산(經山) 정원용(鄭元容)의 남성성(masculinity)

저자
김우정
서지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34
발간일
2017
조회수
1340
SNS 공유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구글 플러스 공유하기 카카오 스토리 공유하기
본고는 19세기 대표적 문벌가였던 경산(經山)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이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며느리를 대상으로 쓴 시문에 나타난 남성성을 고찰한 것이다. 정원용은 아내에게 여러 편의 시(詩)를 지어 보냈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묘지(墓誌)와 제문(祭文)도 직접 지었다. 또 모친의 행장과 누이의 제문도 남겼으며, 딸과 질녀에게 보내는 시도 지었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아내와 딸, 그리고 며느리를 위해 각각 한 편의 ‘수서(壽序)’를 남겼다는 점이다. 수서에 대한 거부감이 다소 희석되었다고는 해도 집안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수서의 창작까지 용납될 만큼 진전된 상황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태도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 일련의 시문은 대부분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아내에 대한 이해와 존중, 노고에 대한 위로 등을 담고 있으며, 가부장제적인 권위나 위엄, 우월감 따위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점이 봉건적 남성성의 이완 혹은 해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원용은 가족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 구성원인 여성의 삶에 대해 기대 이상의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러한 관심을 양성관계에 내재된 본질적 문제로까지 확대해나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 가정의 대소사를 알뜰히 챙겨준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 ‘양우(良友)’요 ‘양필(良弼)’이었다고 회상하는 동시에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부덕(婦德)’이란 이름으로 당연시하는 태도도 보인다. 전통적 의범(儀範)의 틀 안에서 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는 봉건주의적 가부장제가 내면화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아내를 ‘양우’로 호명하며 해로하기를 꿈꾸는 것은 감정적 진정성의 문제를 떠나 봉건적 남성성을 영속하고자 하는 심리가 드러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전글
서사의 이중 구조와 남성 서술자의 문제 -한무숙의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다음글
오가와 요코(小川洋子)문학의 반복의 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