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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여훈서의 일 양상 : 『婦人言行錄』을 중심으로

저자
성민경
서지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35
발간일
2017
조회수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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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權純九(1866~1944)가 편찬한 여훈서인 『부인언행록』(1916)의 간행배경, 체재와 편집원리 및 내용에 공존하고 있는 전통적 지향과 탈전통적 지향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부인언행록』은 『열녀전』의 형식을 본 따 여성인물전기집의 형태로 편찬된 여훈서로, 보다 구체적인 분류 항목을 두어 한층 더 세밀하게 여성들을 규율하고자 하였다. 현토체 한문에 언해문을 붙인 형식과 어려운 어휘에 붙인 주석들은 여성들의 ‘국한문 리터러시’를 제고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인언행록』은 전통 여훈서에 비해 세밀해진 덕목의 분류기준에 맞추어 원전의 맥락에 변형을 가하는데, 이것은 전범이 되는 여훈서를 재가공하고 편집하여 당대에 맞게 변개하는 근대전환기 여훈서 편찬의 일단을 보여준다. 『부인언행록』에는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측면과 전통적 가치에서 벗어나 있는 측면이 공존하고 있는데, 전자는 ‘烈’과 ‘家’, 후자는 ‘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인언행록』은 <守節>에 가장 많은 20명을 배치함으로써, 이 여훈서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여타의 세분화된 항목들에서도 열행을 나열하여 강조하고 있다. 『부인언행록』의 ‘烈’에 대한 강조는 식민지시기에 들어서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은 烈에 대한 가치부여를 드러내며, 전통시대부터 지속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완고한 통제가 얼마나 해체하기 어려운 문제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烈’에 이어 『부인언행록』에서 지향하고 있는 전통적 범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家’이다. 『부인언행록』은 전통적인 여훈서의 형식을 띠고 있는 만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전통 여훈서들이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가문의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 비해 세밀해진 분류 항목을 세워 혼인에 의해 맺어지는 모든 관계들을 포용하고자 했다. 근대전환기 여훈서에서 가족구성원들 간의 화목을 강조하는 경향은 『부인언행록』만의 일은 아니었으며, 그 배경에는 당시 새로운 가족론이 대두되고 혈연적 가족주의가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른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烈’과 ‘家’가 『부인언행록』이 고수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를 대표한다면 ‘學’은 전통적 여훈서의 관행에서 벗어난 탈전통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에 여성의 학문 즉, 여성에 대한 문자 교육은 제한적이고 사적인 범주에서만 이루어졌으며, 여성의 글 읽기와 글쓰기는 권장되지 않았다. 그런데 『부인언행록』이 마지막에 <學問>이라는 별도의 항목을 내세워 여성들에게 학문을 권장한 것은 여훈서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전환기 여훈서들이 여성에게 학문을 권한 것은 여성 자신의 주체적 성장이나 계발을 위한 것이 아닌 자녀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시도를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으며, 그것은 전통시대 여훈서에서 보이는 여성의 학문적 활동에 대한 방어적 경계에 비하면 분명 긍정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지점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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