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국내에서 벌어진 유일한 지상전이라 일컬어지는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미군이 가장 먼저 상륙한 게라마 제도에서는 가족, 친지, 이웃이 서로를 죽이고 자살하는 `집단자결`이 일어났다. 군의 강제 여부를 둘러싼 역사교과서의 기술과 관련해 `집단자결` 생존자의 새로운 증언이 나오고 있는 지금, 시간적·공간적으로 사건의 외부에 있는 이들이 증언을 통해서 이 사건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는 먼저 `집단자결`이 일어난 가상의 섬에서 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 책임 문제를 고찰하고자 하는 주인공을 다룬 오시로 다쓰히로의 소설 「가미시마」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집단자결`이 가해와 피해의 중첩되는 관계 속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집단자결`에 관한 증언과 야카비 오사무, 신조 이쿠오, 오카모토 게이토쿠 등의 논의를 경유해 사건의 바깥에서 그것을 타자화하지 않고서 그것에 다가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