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기존의 가족이 남녀 성별 역할, 이성애중심주의, 혈연성, 공사 영역의 이분화 등 많은 부분에서 비판의 요건들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단지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가족담론을 단지 이념이나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가족 서사의 재배치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를 고려한다. 가족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실재를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논의할 때, 이제까지와는 다른 가족 서사의 재배치가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논문에서는 단순히 가족을 폐기하는 논리 보다는 가족의 관계성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주체를 이루는 하나의 계기를 논의한다. 가족을 자아 혹은 공적 공동체와 대립적인 구도에 놓기 보다는 그들을 자아-가족-공동체로 잇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간주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조선 후기 천주교 여성인 이순이 루갈다의 『옥중서간』을 살펴본다. 『옥중서간』에 나타난 가족 감정을 검토하는 속에서 자아와 가족, 공적 공동체의 관계를 재고한다. 또한 유교적 이념과 천주교 신앙과의 관계를 단지 갈등하는 차원으로 이해해온 기존의 연구 방식을 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