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함경북도 경성의 주을온천 지역에 존재했던 백계 러시아인 마을 ‘노비나’에 관한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한 내전 후 온 가족을 이끌고 한반도로 이주해온 얀콥스키 일가는 사냥과 농경 이외에 망명 러시아인들을 위한 여름 별장촌을 운영하면서 “호랑이와 인삼의 나라”에 “가장 문화적이고 진정 러시아적인 보금자리”를 일구었다. 교회당, 극장, 묘지까지 갖추고 있었던 이 전설적인 영지의 백계 러시아인들은 하르빈과 같은 국제도시의 ‘룸펜로인’들과 달리, 자급자족하는 자치적 공동체의 일원이었고, 노비나 촌 안에서만큼 그들은 주인이었다. 노비나의 특수성은 상해나 하르빈, 신경과 같은 문명의 혼혈도시가 아니라 조선과 주을이라는 원시적 자연을 배경으로 하기에 더욱 부각될 수 있었고, 당시는 물론 먼 훗날까지도 백계 러시아인들은 노비나를 ‘낙원’과 ‘동화의 세계’로 기록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노비나 촌의 백계 러시아인을 향한 조선인 관찰자의 대조적 시각이다. 이 논문에서 비교분석하는 김기림의 주을 인상기는 노비나에 대한 호기심 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곳을 울적하고 센티멘털한 곳으로 규정 짓는다. 노비나를 통해 느끼는 애수의 감정은 곧 식민지 조선인 김기림 자신이 경험하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김기림의 여행기는 낙원상실의 체험기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