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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문학 속의 신라인 -8세기 자료를 중심으로-

저자
사이토 아사코
서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26
발간일
2007
조회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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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8세기의 문헌인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풍토기(風土記), 회풍조(風藻), 만엽집(万葉集)에 기술된 ‘신라인’에 초점을 맞추어, 고대일본인의 타자인식을 고찰한 것이다.고사기에서는 윤공천황이 즉위할 때, 신라의 명의가 윤공천황의 지병을 치료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신라왕자의 자손인 다지마노 모리(多摩毛理)가 도코요노 구니(常世, 불노불사의 낙원)에서 불노불사(不老不死)할 수 있는 나무를 가지고 왔던 전승을 소개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신라가 주술에 뛰어났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서기에도 신라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윤공천황의 즉위할 때 신라의 명의가 왔던 일, 또 윤공천황을 조문하기 위해 온 신라조문사절이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던 일, 신라인의 산악신앙에 대한 지식이 일본 측에서도 어느 정도 있었던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풍토기에서는 신앙형태가 다른 타자로서 신라라는 국명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신라인을 파괴자로 명기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이것은 고래부터 전승되어 온 내용과는 다른 새로운 신라관이 형성된 것으로, 신라를 침입자파괴자로 보았음을 말해준다. 풍토기 편찬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 진다.이와 같이, 이들 문헌은 신라인의 정신적 세계관과 관련된 조약(調藥)에 대한 지식, 산악신앙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인에 있어서 신라인의 모습이 물질보다는 지식 또는 정신적인 면이 부각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회풍조의 신라인은 한시를 통해 일본인과 함께 문예세계를 형수(享受)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에서는 ‘筆海’가 행해지고, 나가야 오(長屋王,나라(奈良)시대 전기의 정치가)의 주변관료는 신라인과의 한시를 통해 창작의욕에 자극받았다. 또, 만엽집의 신라 비구니는 오오토모(大伴)씨의 사호(佐保)저택에서 30여년을 가족과 함께 보냈고, 만엽을 대표하는 일본의 여성가인의 정신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비록 국가는 다르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교류가 전개되었음을 보여 준다.이들 문헌은 공히 8세기라는 시대에 편찬된 자료이지만, 다양한 신라인에 대한 타자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같은 차이는 각 문헌의 편찬사정, 또 시대적 배경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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