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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퀸’(英여왕) 장례식 참석 호텔서 부른 `퀸’노래에 이목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559
등록일
2022-10-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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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트뤼도 총리 ‘보헤미안 랩소디’ 열창
내각 성별 50:50 등 줄곧 소수자 옹호 “그에 걸맞는 애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얼마 전 캐나다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품격’ 논란이 일었다. 트뤼도 총리가 자신이 머물던 호텔 로비에서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일행과 함께 노래를 합창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동영상에 포착된 총리의 열창 장면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일각에서 그가 여왕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런던을 방문 중이었던 만큼,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다.

 한 야당 의원은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가 부른 노래 가사는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총리가 부른 노래는 전설의 영국 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였다. 가사 중 “easy come easy go”라는 대목을 두고 여왕의 사망을 조롱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해당 가사는 영국 속담에서 나온 것으로 `쉽게 온 것은 쉽게 간다’는, 이를테면 쉽게 번 돈은 쉽게 쓰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는 영국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문외한이거니와 세계적으로 벌어진 `품격’ 논란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래서 총리의 `품격’이 어떤 대목에서 왜 잘못되었는지를 세세히 따지지를 못한다. 다만 이 기회를 빌려 캐나다의 한 야당의원이 문제라고 지적한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는 세계평화, 문화다양성 및 소수자 권익 증진이라는 서거한 영국 여왕(Queen)의 평생 과업과 전혀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asy come easy go” 가사로 품격 논란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밴드 `퀸’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엄마, 한 남자를 죽였어(Mama, just killed a man)”로 시작되는 가사 부분은 머큐리가 살아 있을 때 이미 팬과 평론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총을 맞아 죽은 남자는 일반적으로 이성애자로서 머큐리 본인으로 해석되었다. 이유는 보헤미안 랩소디 발표 후 그가 연인인 메리 오스틴에게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고백했고, 그것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끝났다는 점이 거론되었다.

 머큐리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할 무렵 동성애 성향에 눈을 떴고, 1975년 이 곡의 발표는 사실상의 커밍아웃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이러한 해석의 골자이다. 그러나 필자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그의 성정체성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일면적 해석이라고 판단한다.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 동아프리카의 섬 잔지바르(Zanzibar)에서 인도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증명서에는 인종은 파르시(Parsee), 신분은 영국계-인도인으로 기재되어 있다. 8살이 되었을 때, 인도의 영국식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이후 잔지바르로 되돌아 온 프레디는 1964년 초 17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런던에 정착한 젊은 이민자 머큐리는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회화를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음악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1970년 밴드 `퀸’의 결성은 머큐리가 영국의 록가수로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었고, 1975년 `보헤미안 랩소디’의 발간을 통해 세계적인 록스타로 부상하였다. 머큐리가 이민한 1960년대 영국 사회는 인도 출신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당시 영국에는 이민자들에 의해 휩쓸리고 말 것이라는 인종차별적인 우려가 팽배해 있었다. 머큐리는 음악하는 친구들에게조차 자신의 가족이나 종족적·종교적 배경에 대해서 말하길 극도로 꺼려했다.

 `퀸’의 결성과 더불어 머큐리는 `불사라’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버리고 `프레디 머큐리’로 개명했다. 그의 본명은 `파로크 보미 불사라(Farrokh Bomi Bulsara)’이다. 탄생과 더불어 붙여지는 이름은 종족을 드러내고, 민족적 소속성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민자에게 특히 문제적이다.

 새로운 정박지인 영국사회에서 이민자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불사라’라는 이름은 그가 후진적이며, 전근대적이며 또는 사회부적응자이거나 사회복지제도에 의존적인 사람으로 해석하는데 기여하는 일종의 기호이다. 그는 더 이상 `달아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이러한 존재의 굴레로부터 `탈출하고자’ 했고, 그것의 귀착점은 개명이었다.

 `부적응자’ 굴레와 싸운 프레디 머큐리 소환 계기

 밴드 동료 브라이언 메이는 그것은 그에게 “다른 피부색을 입히는 것”이었다고 증언한다. 머큐리가 개명을 통해 유색인종 이민자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영국인’이 되고자 했다는 것이다. “난관에 막혀(Caught in a landslide)” 좌절하고 자신의 삶을 슬퍼하는 젊은 이민자는 개명을 하고, 구식민지 출신 젊은 이민자인 “한 남자를 죽였”다.

 이 곡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가사 어느 곳도 보헤미안과 관련된 것은 없다.

 `보헤미아’는 체코의 지명으로 집시들의 본산지로 알려져 있다. 집시는 유럽의 대표적인 이민 집단으로서 자유를 찾아 유랑하는 종족 집단이다. 그렇다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판타지를 노래한 음악일 것이다. 이 자유로운 보헤미안은 누구일까?

 머큐리의 인종적 배경은 파르시이다. 파르시는 `인도의 유대인’으로 불릴 만큼, 종족의 이산이 특징적이다. 머큐리의 부모 역시 인도에서 아프리카로, 다시 영국으로 이주를 감행한 어떻게 보면 영원한 보헤미안이다. 머큐리가 작사 작곡한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그런 영원한 이민자로서 파르시와 파르시의 일원으로서 그의 가족과 그의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함께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정박지에서, 비록 현실로부터 탈출구를 찾지 못한(No escape from reality) 가련한 젊은이(I’m just a poor boy)지만, 이제 개명하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는 머큐리 자신을 위한 노래가 아닐까?

 인생은 쉽게 왔다 쉽게 가는 것이기 때문에(Because I’m easy come, easy go), 조금 고상하든 조금 천박하든(a little high, little low), 동정 따윈 필요 없다(I need no sympathy)고 한 젊은이가 항변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든 바람은 불어오고, 그러한 것은 나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Anyway the wind blows, doesn’t really matter to me)고 외치며, 자신의 과거와 단절한 한 머큐리는 은유적으로 머리에 총을 대고(Put a gun against his head), 방아쇠를 당겨 자신을 죽였다(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그리고 엄마에게 이제 막 삶이 시작되었다며(Mama life had just begun), 과거의 나를 다 내다 버렸어(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라고 울부짖는다.

 머큐리는 영국의 구식민지를 뜻하는 잔지바르 그리고 유색인종 이민자를 뜻한 `파르시’와 연관된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 “다른 피부색”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출발이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엄마를 울리려던 것은 아니었다며(Didn’t mean to make you cry), 내일 자신이 돌아오지 않더라도(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잘 지내라며(Carry on carry on as if nothing really matters)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의 사안(Freddie’s thing)’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그러나 이 곡은 이미 당대에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이 곡이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없지만,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난관에 처한 유색인종 이민자 `프레디의 사안’이 큰 울림을 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2018년 개봉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오는 머큐리의 발언에 주목해 보자.

 “우리는 부적응자를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 어디엔가 속하지 못하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 그들을 위한 밴드입니다.”

 머큐리가 밴드 `퀸’의 차별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답으로 내놓은 진술이다.

 트뤼도와 그의 노래 논란이 “부럽다”

 보헤미안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아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지만, 그러한 현실로부터 달아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그리하여 마음 쉴 곳조차 없는 이민자, 유색인종, 동성애자, 장애자를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부적응자’를 의미했다.

 머큐리 자신이 소수자 중의 소수자였다. 그는 동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색인종 출신의 이민자였다. 당시 `게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영국사회에서 아프리카 출신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그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나아가 밴드 `퀸’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소수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난관에 부딪힌 현실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은, 전 세계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 밴드에 열광하게 한 이유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자 내각을 성별을 기준으로 완벽하게 50:50으로 구성했다.

 뿐만 아니라 버스기사, 장애인, 시크교도,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그리고 원주민 출신자를 장관으로 기용했다.

 취임식 당일 여러 장관들이 성경, 꾸란, 캐나다원주민 샤머니즘 용품을 활용한 선서를 통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조문단을 이끌고 런던의 한 호텔에서 머물던 트뤼도 총리가 세상의 모든 소수자를 위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한 것은 단순한 해프닝일까?

 캐나다 조문단 중 한 명으로 트뤼도 총리와 함께 호텔에 머물던 국민가수 그레고리 찰스가 호텔 로비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피아노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일까?

 총리가 쉬는 시간에 자신이 투숙한 호텔에서 피아노에 맞춰 영국의 전설적 록그룹 `퀸(Queen)’의 노래를 열창하면서 영국 `여왕(Queen)’을 `다른 방식으로’ 애도한 것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일까?

 그나저나 필자는 트뤼도의 보헤미안 랩소디 열창을 둘러싼 캐나다의 논란이 매우 부럽다.

 `퀸’의 서거에 맞춰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하여 `품격’ 논란을 일으킨 총리 트뤼도와 그런 논란에 휩싸인 캐나다가 새삼 부럽다. 그리고 나는 매우 부끄럽다. 왜일까? 그런데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이 되어야 하는가?

최대희(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기사내용 원문보기: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1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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