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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아픈 것도 서러운데 왜 미안해야 할까?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660
등록일
2022-09-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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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 아픈 몸을 차별하지 않는 공동체를 바라며


픽사베이 이미지.
                                   픽사베이 이미지.


질병보험 광고가 넘쳐나는 사회

10여년 전 유명 탤런트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라는 생명보험 광고 카피가 사실과는 다른 과장된 문구로 금지된 적이 있었다.

당시 생명보험협회는 케이블 TV의 보험광고 또한 줄어들 것이라고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시간 사이사이에는 암보험, 간병보험, 치매보험 등의 광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광고들은 개인 휴대폰으로, TV광고로, 또 홈쇼핑 등으로 일상을 파고들고, 우리는 이 보험 상품 광고를 '물리치며' 하루를 보낸다.

왜 다시 왜 암보험, 치매보험, 간병보험, 치아보험 등의 광고들이 쏟아지게 된 것일까?

암발생률의 예를 보자.

나라지표에 의하면 암발생률(인구 10만명당 명)은 1999년(215.9명) 이후 2012년(454.0명)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2년 이후 2015년(428.3명)까지 감소하였으나, 2016년(455.1명)부터 다시 증가하며 2019년 암발생률은 475.3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암발생률의 증가 추세와 보험 광고 증가 추세는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암환자라면 ‘암밍아웃’하겠습니까?

온갖 매체에서 이렇듯 넘쳐나는 보험 광고들을 마주하다보면 우리 공동체가 질병의 서사 혹은 아픈 이들을 수용하는 데 대단히 개방적일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가 정말 아픈 이들에게 개방적인가? 아니다. 암환자들 사이에서 소위 ‘암밍아웃’의 문제는 항상 찬반을 동시에 불러오는 민감한 문제이다.

한 예로 “암에 걸린 것을 직장에 또는 주변에 알려야 하나요?”라는 고민은 암환자들의 온라인 카페에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이 병을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받았다는 글도 심심찮게 있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굳이…그럴 필요까지…’, ‘일부러 미리 말하지 않겠다’이다. 왜겠는가?

우리는 아픈 몸을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이들은 무력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존재들이며, 나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질병을 상기시키는 불편한 존재들로 간주된다.

또 신자유주의의 무기인 자율성과 효율성의 잣대로 볼 때도 아픈 이들은 민폐의 존재들로 치부된다.

또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아픈 이들의 서사보다는 건강한 이들의 서사에, 혹은 아프더라도 결국 질병을 이겨내고 건강해진 사람들의 성공 서사, 소위 투병기에만 관심을 보인다. 따라서 아픈 사람들, 특히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경제활동 가능여부 보다 먼저 저절로 사회의 루저가 되고 만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 손 들어 보시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는 “질병의 개인화”에 대해 비판한다.

질병의 개인화는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나 생활습관에서 찾고 자기 관리의 실패로 보는 것”이며 “질병의 개인화는 생활습관에 관점을 집중시키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와 구조의 문제는 희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고 이야기한다.

병을 얻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은 운동을 하지 않아서,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어서, 평소 건강에 무관심해서,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두어서…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그 원인을 찾는다. 개인의 반성은 개인의 몫이지만 문제는, 아픈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다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주변의 시선이다. 왜 사람들은 병에 걸린 이에게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던, 요리를 위한 돈과 시간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없게 만들었던,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을까? 

누군들 아프고 싶겠는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인간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우리는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왕국의 시민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 질병의 왕국의 시민이 될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는 질병의 왕국으로 편입될 인구가 많아질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건강한 몸, 특히 건강한 성인 남성의 몸을 정상이라 규정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여성이나 어린이, 노인 그리고 더구나 아픈 사람들은 비정상이 되고 결국 차별받는다. 

“죽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삶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정상적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건강한 몸이란 한 번도 감기에 걸려본 적 없는 터미네이터같은 몸(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몸)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건강한 삶이란 내 신체의 상태와 내 삶의 조건에 맞게 삶을 꾸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아픈 이들을 바라보는 차별의 시선을 거두자. 아픈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아픈 이들이 비정상도 아니다.

세르반테스의 말처럼 죽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삶이므로, 아픈 이들의 삶을 중단시킬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개인들이 어떤 병을 앓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그래서 '아프지만 건강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상상해본다. 

** 나 또한 암투병 중이다. 가족커뮤니티 사업단 동료 몇에게 암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들은 적당한 무관심으로 예전과 다름없이 대하면서도 매우 섬세하게 일을 덜어주었다. 또 안부가 궁금했다는 한 동료의 말에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답하자 그럼 됐다고 쿨하게 반응했다. 내 병에 호들갑 떨지 않는 동료들에게 이 작은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김은영(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기사내용 원문보기: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18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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