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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소중하지만 짐스러운 가족 딜레마 해결은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646
등록일
2022-08-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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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가족커뮤니티의 발명
‘가족커뮤니티’로 보완·대체·확장

Image by congerdesign from Pixabay
Image by congerdesign from Pixabay

 

[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가족커뮤니티의 발명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각박한 세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로 인식된다. 하지만 때로 가족이 남보다 더한 고통을 주기도 있고, 책임과 의무감 때문에 짐스러울 때도 있다. 우리는 가족의 이런 모순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m 1927~1998)에 따르면 가족은 다른 여타의 사회적 집단들과 달리 전인격적인 소통을 특징으로 한다. 즉 가족은 한 사람의 인격과 관련된 모든 것이 소통되리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보통의 사회생활에서 우리는 인격 전체를 나누는 게 아니라, 능력, 직급, 성과, 역할, 외모, 이해타산 등 상대방과 부분적인 관계만을 맺는다. 

하지만 가족은 나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식생활, 의식상태, 애정, 돌봄, 사회화, 교육, 여가, 가치관, 정치적 입장 등)을 들을 권리가 있고 말하고 답해야 할 의무도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권리와 의무가 기대만큼 충족되지 않을 때 가족에 대한 오해와 불통, 갈등과 폭력이 싹트게 된다. 내 인격의 모든 것을 가족에 짐지우고 가족을 통해서만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가족기능의 과부하로 우리는 매우 위험한 소통에 노출될 수 있으며, 급기야 가족해체에 이를 수 있다. 

가족 기능의 과부하

가족의 전인격적 소통의 기능은 가족을 안정감과 행복을 주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극단적인 불안정과 불행의 근원지로 만드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우리는 가족이 사랑과 인정, 소속과 근원적 존재감이라는 긍정적 의미도 갖지만, 다른 한편 상처와 트라우마, 갈등과 정체성 위기라는 부정적 의미도 갖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족을 이해하는 것은 가족의 이런 이중 특성을 반성적으로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근대사회만큼 개인의 자기의식과 주체성이 발달하지 않아서 가족 내 갈등이 위험하지 않았다. 가문의 법과 의례, 가부장적 질서에 따라 가족구성원의 역할이 고정되었고, 이는 주체의 욕구에 따라 변화되기가 어려웠다. 

또 하나 전통사회에서 가족의 위험부담이 적었던 이유는 가족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공동체와 지역사회의 연결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를 키우고, 관혼상제를 치르고, 재난을 이겨내는 일이 내 부모, 내 자식만의 일이 아니었고, 친족 및 지역사회의 망 속에서 공동의 문제로 다뤄졌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가족이 부부와 자녀 중심의 핵가족으로 변화되면서 친족 및 지역사회의 망, 즉 사회성(sociability)은 후퇴된다. 핵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계와 재산을 유지하는 기본 단위가 되면서, 가족과 사회가 격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가족에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고, 신뢰에 기반한 인격적 소통을 거리나 지역사회로부터 엄격히 구분된 가족 내에서만 이뤄지도록 강제했다. 소중하지만 동시에 짐스러운 가족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과 사회의 격리 해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가족’하면 부모와 자녀, 혈연관계를 떠올린다. 요즘은 친척관계도 멀어져서 가족이 더 원자화되는 추세다. 이런 가족의 틀 안에서 생계 걱정 없이 여유롭고, 양육과 교육, 부양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가족 안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며 정서적 안정을 취하는 것도 경제적, 문화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남성 가장 또는 맞벌이 부부가 감당하기에 현대가족의 문제가 너무 많고 벅차다. 부부는 서로의 어려움을 상대가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지만, 지금의 제도적 가족 안에서 이 기대는 어긋나게 마련이다.   

“신성한 핵가족의 환상 내려놔야”

‘가족커뮤니티’라는 개념이 있다. 법적·제도적 가족의 틀에 갇히지 않고 가족을 보완, 대체,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친밀관계의 장(場)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 같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이들이 있다. 때로는 친구, 도시공동체, 동네, 마을, 문화예술, 지역사회가 나와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가족이 되어주곤 한다. 가족커뮤니티는 전통사회에서처럼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폐쇄적 체계가 아니라, 각자의 욕구를 존중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돕는 유연한 포용적 관계맺음을 포괄한다. 

나의 가족커뮤니티를 지도로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부모와 자녀 이외에 나의 인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이들은 누구누구인가? 내 살점이자 인생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물과 존재들은 무엇인가? 삶의 굴곡점마다 살아갈 이유와 의미를 발견했던 사건은 무엇인가? 가족커뮤니티는 경제논리나 이윤법칙이 아니라, 전인격적 소통을 기준으로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별자리처럼 연결한 일종의 지도와 같다. 

가족은 혼인과 출생신고와 같은 법적 규율을 통해 한계지어지지만, 가족커뮤니티의 지도는 사람마다 양자리, 게자리, 천칭자리처럼 다양할 수 있다. 

또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재구성되고 변화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양육의 짐을 나누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어떤 이는 마음 맞는 이들과 공동주택을 짓고 삶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또래 친구들과 취미활동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어떤 이는 생태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운동을 하면서 의미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즉 가족커뮤니티는 새로운 발명과 자기창조의 대상인 것이다. 

가족이 고통스럽고 힘들다면 가족에 집중된 마음의 눈을 돌려 가족커뮤니티를 발명해보기 바란다. 

가족커뮤니티의 발명을 위해서는 신성한 핵가족의 환상을 내려놓는 일이 중요하다. 행복한 가족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이나 타인의 기대치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가족의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자녀로서 갖는 부담을 솔직히 바라보고 우리 가족의 취약함을 인정할 때, 다양한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관계 맺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류도향(전남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기사내용 원문보기: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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