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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초연결 사회, 페미니스트 다중 속 레즈비언 친밀성의 새로운 실천들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173
등록일
2021-10-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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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 (13) 친밀성에 대해 질문하기와 일상의 정치

픽사베이 이미지.
픽사베이 이미지.

흔히 누군가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 우리는 ‘친하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친하다’라는 언어 표현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친소관계에 대한 감각이란 정확히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 걸까? 친하다, 친근하다, 친밀하다, 밀접하다, 가깝다, 와 같은 유의어들 속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친하다’는 형용사를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로 정의한다. “사귀어 지내는 사이가 아주 가깝다”, “지내는 사이가 매우 친하고 가깝다”,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다” 또한 친하다는 형용사의 유의어들을 정의하는 언어다. 이러한 언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친하다는 표현과 그 유의어들에는 ‘가까움(closeness)’이라는 공간적 거리 감각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는 누구일까? 저마다 다르겠지만, 흔히 가족을 떠올릴 것이다. 가까움이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관계적 공간 감각에 대한 정렬이라면, 가족은 ‘나’와 몸적으로 접촉하고 정서적 의존과 돌봄을 공유하는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의 단위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은 친밀한 관계(intimate relationship)의 전범이자 친족적 친밀감(kin intimacy)의 연쇄를 통한 친밀성(kinship)의 전형으로 호명되는 관계적 실제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은 이면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표상으로서의 가족은 ‘혈연가족’과 ‘정상가족’이라는 호명을 통해 빈번하게 비판받아온 것처럼 가족형태와 가족상황의 다양한 욕구에 열려있지 않다. 또한 가족과 관련된 페미니스트 연구들이 반복해서 지적해온 것처럼, 무엇보다 한국사회에서 표상으로서의 가족은 강고하게 젠더화되고 (이)성애화된 규범적 친밀성을 유포하는 담론적 도구이기도 하다.

또한 한편으로 가족은 비단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이러한 관점에서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근래 해러웨이를 위시한 친밀성(kinship)에 대한 사유는 우리가 누구를 가깝게 느끼고 우리가 무엇과 연결되는가에 대한 연결성의 재정의를 통해 친족(kin)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재성찰(“친족 만들기”)을 촉구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친밀성은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영역에 속하는 감각임과 동시에, 매우 정치적인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친밀성이 정치적 범주인 까닭은 타자와의 가까움, 타자와의 관계를 상상하는 방식이 곧 사회를 상상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초연결 사회, 친밀성의 새로운 양상들

그렇다면 삶의 정치로서의 친밀성은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어떤 새로운 양상으로 상상되고 있을까? 필자는 2010년대 이후 동시대에 이르는 페미니스트 다중의 출현 속에서 동성친밀성(same-sex intimacy)의 한 벡터로 펼쳐지는 비규범적 친밀성의 사례로서 레즈비언 친밀성의 관계적 실천 양상의 새로움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레즈비언을 비롯해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삶은 가족과 친밀성 사이의 느슨한 또는 미끄러지는 결합관계를 경험적으로 예증한다 할 것이다. 레즈비언 개인에게 원가족은 때로 매순간 패싱(passing)과 커버링(covering)을 해야 하는 힘겨운 대상이자, 애증의 공간이다. 탈가정에 대한 고민이나 탈가정 경험이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도 적지 않다. 이처럼 레즈비언 당사자들에게 가족은 흔히 언택트(untact)되어 있다.

그러니 레즈비언들에게 초연결 사회는 적응해야 할 숙제라기보다 컨택트(contact)를 위한 조건에 가깝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 역사는 그런 의미에서 레즈비언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새로운 연결성을 획득해갔던 역사이기도 하다. PC통신에서부터 세이클럽, 카페·홈페이지 등의 비공개 커뮤니티, 메시지 앱과 오늘날 SNS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변천하는 레즈비언 공동체의 연결성은 알음알음 전해지는 레즈비언 공간을 찾아갈 정보를 얻고 파트너십을 맺을 상대를 탐색하는 것을 넘어서, 무엇보다도 서로를 알아보고 연결되기 위한 토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즈비언 하위문화는 늘 비가시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레즈비언이 처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 취약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현황 속에서 2010년대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의 흐름을 타고 한국사회에 대중화된 페미니즘 운동과 페미니스트 다중의 출현은 동성친밀성에 대한 의제를 통해 규범적 친밀성을 넘어선 다양한 친밀성의 정치적 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 SNS 상에서 출현한 레즈비언 당사자들이 서구의 2물결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의 언어를 빌려와 레즈비언 정치학에 대한 확장된 레즈비어니즘 담론을 게재하였다면, 2019년 이후에는 <피리 부는 여자들>, <코로나 시대의 사랑>, <레즈라이트> 등과 같은 출판물과 메일링 서비스와 함께 더 다양한 레즈비언 당사자들이 SNS 상에서 출현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소수자-쓰기의 집단적 말하기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게 되는 까닭은 비단 이들이 규범적 친밀성의 대척점에서 동성친밀성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동시대 한국에서 레즈비언 친밀성에 대한 더 다양한 탐색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각각의 레즈비언들의 실존적이고 현실적인(때로는 적나라한) 욕구들을 실제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이기에 더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하겠으나,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에 대한 대항담론의 차원을 넘어서 이들 레즈비언들의 드러내기와 연결되기는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흔히 재현되고 선망되는 계급적·젠더적 파트너십에 기초한 동성애규범성(homonormativity)과 같은 규범들조차 도전적으로 무색하게 만드는 양상은, 지금-여기 연결접속하는 새로운 레즈비언 공동체의 동시대적 풍경을 흥미롭게 살펴보도록 만든다.

규범적 친밀성을 넘어, 친밀성의 유동적 풍경으로

이처럼 페미니스트 다중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레즈비언 친밀성의 다양한 실천들이 본격적으로 탐색 및 개진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확장된 레즈비언 공동체의 풍경들은 가족과 커뮤니티에 대한 규범적 친밀성에 근거한 친밀성의 정치를 진지하게 숙고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가족의 정의를 “의존성, 의무감, 사랑, 돌봄, 또는 협력 등의 이유로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구성한 집단”으로서 포괄적으로 재규정하고, “다양한 돌봄과 친밀성의 욕구에 대응”하는 가족 형태를 포용하고자 하는 방침을 내놨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비혼과 1인가구의 지속적인 증가는 이러한 대응 전략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2021년 이후의 정책적 변화는 초연결 사회 속 페미니스트 다중의 자유분방한 흐름 속에서 행해지는 가족과 커뮤니티에 대한 유동적 친밀성의 지대와 그럼에도 계속해서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꾸는 이 여성들의 욕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정미선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



기사내용 원문보기: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10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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