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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의식적인 경험 ‘거리두기’… 끊임없는 갈구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304
등록일
2021-09-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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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 (12) 코로나19 시대 관계 맺음의 역동
[언택트 시대, 새로운 컨택트 사유하기]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시대.  카페의 모습. 광주드림 자료사진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시대. 카페의 모습. 광주드림 자료사진

[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 (12) 코로나19 시대 관계 맺음의 역동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이 일상화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팬데믹의 공포에서 시작하여 엔데믹으로 전환을 준비하는 위드코로나가 가시화되고 시기를 어느덧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상의 주변을 장악한 거리두기라는 단어와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거리두기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에 다름 아닌데, 문제는 거리두기라는 물리적 거리가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심리적 거리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일상에서 거리두기를 의식적으로 경험한 적이 거의 전무했다. 오히려 거리를 두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거리를 더 좁히고 상호 소통과 친밀감을 형성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의 경우 그동안 기울여왔던 관계에 대한 노력이 다 어디로 사라졌나 싶을 정도로 거리두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관계의 낯설음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들 서로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 각자 맺어온 관계가 버겁고 힘들었음을 역설적으로 표출하는 현상으로도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음은 늘 ‘따로 또 같이’라는 구호의 쳇바퀴 속에서 맴도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관계맺음까지 단절할 순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관계 맺음을 단절해 나가지 않는다. 늘 어렵고 힘든 것임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사람을 갈구하고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계는 다양한 형상으로 우리 주변에 현시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사람 사이의 사랑이다. 이성 간의 사랑,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은 기본이고 동성 간의 사랑은 우정이란 이름으로, 사람과 다른 종의 사랑은 반려란 이름으로 호명된다. 어떠한 방식이든 관계 맺음이 중심에 놓여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중에서 우리는 사랑을 중심으로 관계 맺음을 생각해 보면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를 중심으로 한 낭만과 열정을 떠올리게 된다. 낭만적이고 열정적 사랑은 남녀 사이에 주어진 고난을 극복하게 만드는 핵심 기제이자 내면에 존재한 특수한 힘을 추동시키는 동인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것이 전부인양 이해될 수는 없다. 사랑에는 육체적 관계 뿐만 아니라 정신적 관계 또한 못지않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정신적 상호 소통을 통해 절대적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밑바탕을 이룬다는 점에서 관계 맺음의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남녀 간의 정신적 상호 소통, 이른바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저변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주목되는 게 바로 서로 간의 ‘지기(知己)’에 대한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지기’란 나를 알아주는 이를 뜻하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성과 동성을 뛰어넘는 관계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에 등장하는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백아절현(伯牙絶絃)’고사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등장하는 전국시대 진나라 사람으로 유명한 자객이었던 ‘예양(豫讓)’과 같은 인물을 통해 지기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마음 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인간은 늘 언제나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바라고, 상대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내재된 존재임을 의미한다.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지기에 대한 욕망은 통시대성을 가진 것이기에 우리는 오래된 옛 문헌과 문학 작품 속에서 그러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 작품에서는 남녀 간의 관계 속에서 지기 찾기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라 말 고려 초에 창작된 최치원과 『삼국유사』에 수록된 ‘김현감호’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최치원은 우리에게 도당유학생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최치원을 지칭하는데, 작품은 실존 인물인 최치원을 끌어들여 귀신인 팔낭자, 구낭자와 사랑을 나누는 관계를 그려낸다. ‘최치원’에서 주목되는 관계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정신적 교감이다. 이들의 관계는 현실 속에서 성취될 수 없는 당연한 결론으로 귀결되지만, 최치원이 질적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된다. 

한편 『삼국유사』에 수록된 ‘김현감호’의 경우 사람과 호녀라는 동물 사이의 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김현과 호녀는 찰나의 감정 교류를 통해 관계를 시작하지만 이종의 관계라는 특수성이 관계의 엇갈림을 촉발하고 있다. 이점은 다음과 같은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 확인된다. 

“김현이 말하기를 ‘사람과 사람끼리 관계함은 인륜의 도리지만 다른 부류와 관계함은 대개 떳떳한 일이 아니오. 그러나 이미 잘 지냈으니 진실로 천행이라고 할 것인데, 어찌 배필의 죽음을 팔아서 한때의 벼슬을 바랄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처녀가 말하길 ‘낭군께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 제가 일찍 죽음은 대개 천명이며, 또한 제 소원이요, 낭군의 경사요, 우리 일족의 복이며,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한번 죽음으로써 다섯 가지 이익을 얻게 되는데 어찌 그것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하여 절을 짓고 불경을 강하여 좋은 과보를 얻도록 도와주시면 낭군의 은혜는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겠습니다.’ 마침내 서로 울면서 작별했다.”

욕망의 근원에 자리한 관계맺음

위의 대화를 통해 김현과 호녀는 동종이 아닌 이종 간에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관계 맺음을 천행이라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김현과 호녀의 관계 맺음이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대상을 찾은 것을 증명한 것에 해당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호녀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희생을 통해 김현과 호랑이 오빠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헌신적 태도를 보인다. 호녀의 행동은 김현의 성공과 호랑이 오빠들을 포함한 가족의 안녕을 마련하기 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호녀의 희생과 헌신은 지기 찾기의 욕망을 성취한 결과로 연결된다. 

문학 작품 속에 재현된 지기 찾기의 욕망은 단순히 열정적 사랑으로만 비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욕망의 근원에는 관계 맺음이 자리하고 있고, 그것은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울고 웃을 수 있는 존재임을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도 이것과 같지 않을까? 바쁜 일상 속에서 곁에 존재하는 가족, 친구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때론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외면하려 했지만, 결국 그 일상의 소중함을 재난 경험을 통해 환기하게 된다는 점에서 관계 맺기의 가치와 역동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순간의 소중함과 일상의 가치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관계의 단절이 일상으로 다가오기 이전에.
한의숭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기사내용 원문보기: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1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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