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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언택트의 압력에 저항하라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864
등록일
2020-10-1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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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_1]
언택트 시대, 새로운 컨택트 사유하기

 
언택트 담론에서 우리의 삶을 그 심원에서 지탱하는 것들이 거세되고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택트 담론에서 우리의 삶을 그 심원에서 지탱하는 것들이 거세되고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 가족커뮤니티 사업단 교수진이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사업단은 ‘초개인화 시대, 통합과 소통을 위한 가족커뮤니티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인문학적 성찰과 상상을 바탕으로 열린 가족, 신뢰와 조화의 공동체 문화를 연구·확산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언택트 서비스, 언택트 채용, 언택트 의료, 언택트 추석 등…. ‘언택트’는 코로나 19로 대세가 된 신조어다. 해외에서는 ‘no-contact’나 ‘zero contact’가 주로 사용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부정사 ‘un’을 붙여 쓰고 있다. 이 용어는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밸’(적당히 벌면서 잘 살기를 희망하는 라이프스타일), ‘가심비(가격대비 마음의 만족도)’처럼 국내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언택트’는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에 의해 전통적인 생산 활동과 소비 지형이 비대면으로 대전환되는 현상을 특징짓는데, 코로나 국면에서 산업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 정치, 고용, 주거, 대중문화 등 사회 전분야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마치 언택트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팬더믹 위기상황에 발맞춰 생산성을 증대하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생존 전략은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언택트 담론이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화두가 되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생명 존엄적이고 보다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탐색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20세기 대도시, 짐멜이 본 언택트 ‘빛과 그림자’

19세기 유럽이 대도시로 급성장하는 혼란 속에서 짐멜(Gerog Gimmel, 1858~1918)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1903)이라는 짧은 강연록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양가성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그는 21세기 4차산업기술을 보지 못했지만,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서도 화폐와 기술을 매개로 관계하는 사회시스템의 구축과 그 속에서 인간이 개별화되고 고립되는 언택트 경향을 포착했다. 
그가 정의한 대도시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교류가 다차원적으로 일어나고 사회적·기술적 메커니즘을 통해 비인격적, 익명적 만남이 지배적인 공간이었다. 그는 이런 공간 배치 속에서 과연 인간이 하나의 기능으로 평준화되거나 소모되지 않고 독립과 개성을 실현한 ‘질적 개인’으로 도약할 수 있는지 물음을 던진다. 당시 그의 대답은 빛과 그림자가 뒤엉켜 있다는 것이었다. 
짐멜은 한편으로 대도시의 외부 힘들을 잘 활용할 경우 인간은 자신의 성과를 전문화시키고 욕구를 분화·세련화시키면서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도시의 비인격적 구조에 압도된다면, 인격적인 구조에 변형이 일어나면서 인간은 고도로 문명화된 부자유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짐멜은 그 부자유의 핵심을 “둔감함”으로 꼽는다. 그가 말하는 둔감함의 태도는 단순히 감각이 둔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 점점 타자와 감성적, 정서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로지 지적인 상호작용만을 함으로써 논리적 이성으로 포착할 수 없는 질적 관계와 반응들에 마비되며, 궁극적으로 사물과 사람들이 지닌 차이와 타자성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타자와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내적 관계도 맺지 못하는 불구의 상태로서 근원적인 삶의 불안, 자기회의, 공허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불구의 상태에서 인간은 “가장 멀리 있는 것(익명의 타인, 이해타산, 양화된 데이터)에 잘 접근하고 화해할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것(접촉, 친밀함, 삶의 의미, 가치)에 냉담하고 때로는 소외시키는 객관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면과 접촉 빈자리 파고들 글로벌 자본주의

짐멜은 대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인식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도시 환경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친교”를 한 가지 대안으로 제시했다. 친교는 “노동분업과 직업적 전문화의 피안에 존재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공간”으로 누구나 순수한 인간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대화와 교제, 그리고 유희를 추구한다. 자신의 인격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면서 만나는 것 자체가 사용가치를 갖는 친교활동에서 인간은 거대한 비인격적 네트워크에서 영혼을 되찾는 시간을 향유한다. 
20세기 짐멜의 사유를 21세기에 맞닥뜨린 언택트 현실로 전유해볼 수 있다. 언택트, ‘no-contact’, ‘zero contact’ 어떻게 명명하든 4차산업혁명기술은 사람과 사물의 상호관계를 더욱 초연결시킬 것이며, 그로 인해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관계성은 보편화될 것이다. 
대면과 접촉을 수반하는 내적 관계성은 지금보다 더 희소해지질 것이며 그만큼 사람들이 바라는 심원한 욕망의 대상이 될 가망이 크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생명 권력과 문화 산업을 앞세워 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할 것도 자명하다.  
언택트 담론에서 우리의 삶을 그 심원에서 지탱하는 것들이 거세되고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자를 향한 욕망, 공동체적 열정, 집단적 근본지대, 모든 함께 하기의 밑바닥이 되는 어떤 장소에 대한 소속감, 공감의 사회성, 공유의 가치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지켜갈 수 있을까? 언택트의 압력에 저항하는 힘으로서 컨택트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류도향(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류도향 

출처:광주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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