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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김화영·유초희·정서현은 어떻게 살까?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29
등록일
2022-08-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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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동시대 레즈비언 서사와 ‘선언 이후’

선언으로서의 레즈비언 서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수목드라마)의 2회 ‘흘러내린 웨딩드레스’에서는 레즈비언 커밍아웃 서사가 등장한다. 법정드라마의 특성 상 이 드라마 에피소드에서는 민사소송의 원고와 피고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사건은 대현그룹 후계자와의 결혼식에서 신부 김화영의 웨딩드레스가 흘러내려 결혼식을 망친 손해배상의 소를 제기하는 데서 비롯된다.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김화영의 아버지이자 회장인 김정구는 결혼식 이후에 사돈댁으로부터 받기로 약속한 땅 때문에라도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받고 싶어하는데, 이를 우영우가 속한 법무법인 한바다가 수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의 첫 시퀀스인 결혼식 장면을 보면서, 어떤 시청자들은 금방 이 에피소드가 레즈비언 서사일 것임을 짐작했을 것이다. 첫 시퀀스를 보자마자 어떻게 레즈비언 서사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어둡고 떨떠름한 표정의 신부, 주저하는 웨딩마치, 버진로드에서 멈춰서서 여성들이 한데 서 있는 하객석을 바라보는 풍경. 벽장 레즈비언의 원치 않는 결혼 이야기의 단골 소재다. 이 서사는 어떻게 끝날까.

“소 취하하겠습니다!” 에피소드의 말미에서 김화영은 용기를 내 법정에서 선언한다. 그리고 아버지 김정구를 위시하여 김화영이 레즈비언임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10년 동안 사랑한 여성 연인을 소개한다. “내 재판이고 내 결혼이고 내 인생”이라는 선언, 김화영은 그 ‘언니’와 함께 떠난다. 재판장이 버진로드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오늘날 동시대의 문화에서 이러한 레즈비언 서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령 2021년 tvN에서 방영한 ‘갯마을 차차차’의 유초희를 기억하는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유초희는 가상의 마을 청호시 공진동에서 여화정과 장영국 사이의 삼각관계를 구성하는 인물이자 여화정-장영국의 사랑과 재결합 이야기의 주요한 걸림돌로 등장한다. 그러나 장영국이 짝사랑한 ‘첫사랑의 전형’이자, 아이들을 좋아하고 다정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성으로서의 유초희는 사실 레즈비언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유초희는 레즈비언임을 들켜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오빠와 가족들로부터 공진에 유배되고, 여화정을 사랑하게 된다. 이 드라마의 말미에서 유초희는 자신의 사랑을 어렵게 긍정하고 용기와 자긍심을 바탕으로, 사랑했던 언니 여화정에게 고백하며 장영국과의 재결합을 축복한다. 전형적인 이성애 로맨스의 삼각관계 구도를 레즈비언 인물을 통해 한 번 비튼 것이다.



이 두 편의 레즈비언 서사들은 ‘알고 있지만,’(jtbc, 2021)의 윤솔과 서지완 서사, ‘더 로드: 1의 비극’(tvN, 2021)의 차서영과 권여진 서사와 함께 2020년대에 더욱 본격화되고 있는 레즈비언 서사의 대중문화적 출현을 예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대 레즈비언 서사의 가장 본격적인 서사화가 이루어지고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사례는 2021년 tvN에서 방영한 텔레비전 드라마 ‘마인(MINE)’이다.

‘마인’은 동시대 레즈비언 서사의 문화적 컨벤션을 함축해놓은 축소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레즈비언 캐릭터로 등장하는 정서현은 재벌가의 첫째 며느리로, 둘째 며느리인 서희수의 탈혼 서사를 돕는 연대자이자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으며 이 드라마의 여성 연대를 지탱하는 주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서현의 레즈비언 서사는 ‘옷장’과 ‘좁은 문에 갇힌 코끼리 그림’으로 상징되는 자기긍정과 커밍아웃으로의 길에 치중되어 있다. 정서현은 최수지와의 사랑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책무(기대) 사이에서 번민하며, 서희수와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여성 간 연대를 구현하는 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책무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지지받는다.

이처럼 오늘날 레즈비언 서사들은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의 흐름 속에서, 유해하고 여성혐오적인 이성애 로맨스와 이성애 제도의 각본을 탈중심화하고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경향성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 동시대 레즈비언 서사의 범람은 더 이상 ‘죽거나 사라지거나 처벌받는’ 레즈비언을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꼭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선언’으로서의 레즈비언 서사를 다룬다는 점이다.

선언 이후의 레즈비언 서사

그렇다면 선언 이후의 레즈비언들은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하며 살까? 친밀한 권력과 폭력이 일상 곳곳에 임재하는 가운데 레즈비언 여성들의 생애는 보이지 않는다. 섹슈얼리티 실천은 단순히 사적인 프라이버시의 영역이라는 생각, 위기(risk)의 관리와 위험의 회피, 이성애규범성에 의한 인식불가능성 등 다양한 원인과 요소가 이 ‘보이지 않음’에 관여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텔레비전 드라마를 위시한 레즈비언 서사의 다양한 양상에 주목해온 독자라면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김화영, ‘갯마을 차차차’의 유초희, ‘마인’의 정서현은 ‘이후’에 어떻게 살까? 그들은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너머에서 타인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늙어갈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러한 레즈비언 생애모델들을 더 다양하게 접할 수 없는 걸까. 선언 이후의 레즈비언 서사는 없을까?

오늘날 동시대 레즈비언 서사의 한편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살펴볼 수 있는 레즈비언 커밍아웃 서사가 있다면, 문학 장에서 펼쳐지는 동시대 소설들 속의 레즈비언 서사에 주목해볼 수 있다. 포스트-강남역 서사의 계보에서 빚어지는 이러한 서사들은 여성 간 관계성을 전방위적으로 탐색하는 흐름 속에서 제시된다. 주로 서사화되는 것은 여전히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한 사랑이나 연인 관계, 또는 이성애자 어머니와 레즈비언 딸 사이의 관계 등 친족을 중심으로 한 관계이다.




그런데 그러한 와중에도 근래 상당히 변별되는 레즈비언 서사의 계열체가 나타나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이를 ‘레즈비언 이모’의 탄생이라 일컬을 만한데, 조우리의 ‘이어달리기’(2022, 한겨레출판)와 황정은의 ‘올빼미와 개구리’(2021, 큐큐)에서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이 두 편의 소설들은 모두 돌봄수행자로서의 레즈비언 서사를 보여준다. 수치심, 자기부정, 자긍심을 둘러싼 커밍아웃 서사는 이들 소설의 중심적인 내러티브가 아니다. 황정은의 ‘올빼미와 개구리’에서 천지영과 김지금은 29년 동안 함께 살고 있는 레즈비언 연인이며, 어린 강영은을 돌본다. 강영은은 파산해 동반자살을 결심한 부모에게 살해당할 뻔한 생존자 여성으로, 자살에 실패한 부모 곁으로 돌아간 뒤에도 천지영과 김지금과 이따금씩 함께 산다. 조우리의 ‘이어달리기’에서 성희는 수영, 지애, 예리, 태리, 소정, 지민, 아름의 ‘이모’가 되어 그들의 유년과 생애서사에서 사랑과 돌봄 그리고 연대와 같은 의미 있는 지지의 관계를 수행한다.

이들 두 서사에서 돌봄수행자로서의 레즈비언 여성(들)은 친족 내 관계 그리고 친족 내 여성 간 관계성에서 사랑, 돌봄, 연대의 감각을 쉽사리 느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족실천의 현황 속에서 여성 아동과의 세대전이적 돌봄의 대안적 연결을 구성하기도 한다.

‘올빼미와 개구리’에서 천지영과 김지금의 돌봄은 어릴 적 천지영을 돌봐주었던 레즈비언 연인의 ‘고모들’로부터 강영은으로 이어지는 호혜적 돌봄의 이어달리기이기도 하다. ‘이어달리기’에서 레즈비언 이모의 전형으로서의 성희는 여자친구 주현의 조카, 옆집 세탁소 딸, 직장동료의 딸, 언니와 재혼한 남자의 딸, 간병하던 병원에서 만난 아이, 장학재단 멘티로 만난 아이 등 삶의 흐름 속 면면에서 만난 어린 여성들을 각각의 방식으로 돌본다.

이러한 돌봄수행자로서의 레즈비언 서사는 여성 간 관계성의 탐색에서 여성 연대, 워맨스, 레즈비언 로맨스 그리고 레즈비어니즘과 같은 서로 다른 위치를 횡단하면서 비혈연적 여성공동체의 구성소로서 유산과 상속 그리고 돌봄의 주체가 되는 레즈비언 이모의 환상을 구현해낸다. 선언 ‘이후’의 레즈비언 서사가 구현되는 한 방식이다.

레즈비언 서사의 정동적 평등 탐색하기

동시대 레즈비언 서사의 양상은 전통적인 죽거나 사라지거나 처벌받는 레즈비언 여성이 아닌 다른 방식의 레즈비언-삶을 서사화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들 서사체들 속에서 레즈비언 여성들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정체화하는 과정과 그 선언을 드러내기도 하고, 친족 관계를 둘러싼 갈등과 인정의 서사에서 벗어나 그 바깥의 여성들과 세대적, 문화적 차이를 가로지르며 돌봄의 대안적 연결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사들은 오늘날 대중문화를 비롯하여 다매체 미디어의 해석소를 구성하는 해석공동체로서의 여성-독자들, 여성-시청자들의 서사적 욕구와 길항하여 다양한 레즈비언 서사의 새로운 출현을 추동하고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레즈비언 서사는 유례없는 관심과 사랑 속에서 여성 간 관계성을 전방위적으로 탐색하는 데에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로 그것은 ‘갯마을 차차차’의 유초희 서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성애 관계성의 들러리이자 조력자로서 자리하거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김화영 서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선언에 붙박이거나, ‘마인’의 정서현 서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여성 연대의 보증수표이자 아이를 사랑하고 양육하는 여성이 됨으로서 레즈비언임의 불온성을 겨우 소거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올빼미와 개구리’나 특히 ‘이어달리기’에서처럼 대안적 돌봄수행자로서 후세대의 여성들에게 사랑, 돌봄, 연대의 노동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동적 관계 맺음의 판타지로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계 속에서 작업하는 것은 갓 본격화되고 있는 동시대 레즈비언 서사의 연속체와 레즈비언 연속체의 확장 속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레즈비언 서사들이 또 우리 문화에 등장하게 될까? 그러한 서사들 속에서는 더 나아가 레즈비언 여성들의 레즈비언-삶 시간과 정동적 관계 맺음의 ‘평등’을, 그리하여 ‘선언 이후’로도 계속 이어질 그들의 생애 또한 우리가 배워나갈 수 있을까? 기대해봄 직하다.

정미선(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기사내용 원문보기: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16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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