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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코로나19로 환기되는 공동체란?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660
등록일
2020-10-3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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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_2]
언택트 시대, 새로운 컨택트 사유하기



 



2020년은 코로나19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뉴 노멀’(New Normal) 시대란 언어로 함축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예외없이 마주하게 된 전염병이란 재난은 단순히 국지적 현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의 삶에 대해 새롭게 재편하고 예비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다. 
물론 전염병으로 통칭되는 재난이 현재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지구를 휩쓴 전염병은 이미 20세기 초에 스페인 독감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앞선 중세 시기에는 전염병 뿐만 아니라 기근, 홍수, 전쟁 등이 전염병에 필적할 정도로 인류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기근·전쟁 재난시 가장 피해받는 백성들
한반도로 눈을 돌려보면, 기근·전쟁 등과 같은 재난은 도처에 무수한 기록으로 생생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 기근의 경우 ‘경신대기근’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경신대기근’은 1670(경술년)~1671년(신해년)까지 2년 동안에 걸쳐 일어난 재앙으로 당시 조선 인구의 약 5분이 1인 100만 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당시 임금인 현종은 전국이 황폐화된 상황 속에서 국정을 회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조선 전역에 걸쳐 대동법이 전격적으로 실시되는 조세제도의 대전환이 마련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경우 임진왜란이 대표적으로 1592~1598년까지 펼쳐진 전쟁으로 인해 조선과 일본,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지배질서 체제가 재편되는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근과 전쟁 등과 같은 재난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는 건 백성이다. 백성은 생존을 위해 국가의 도움을 바랬지만, 현실적으로 즉각적인 구원을 얻진 못했다. 때문에 이들이 주로 의지하는 건 가족이었다. 전쟁과 관련된 기록 가운데 주로 잘 알려진 자료는 대개가 임진왜란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기록으로 남천 권두문의 ‘호구일록’이라는 포로일기가 있다. 이것은 권두문이 포로로 잡혀 있는 기간 동안 포로자의 시선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위기 상황 속에서 본인이 실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에 해당된다. 이러한 일기는 거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경우다.
‘호구일록’속에는 전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포착되어 있다. 침략자인 일본군과 피해자인 조선 백성의 형상이 적나라하게 대비되고 있고, 조선 백성사이에서도 사대부의 시선과 평민의 시선이 교차되고 있다. ‘호구일록’은 다양한 시선이 교차되는 양상 속에서 국가와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모습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호구일록’ 속에서는 포로 신분 속에서도 임금을 향한 신하의 충성이 표출되고, 부모와 자녀, 부부 사이에서 효와 열이라는 중세적 가치가 구현되기도 한다. 

무차별적 재난 앞에 묻히는 목소리

뿐만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만이 아닌 우리를 지향하는 인류애를 경험하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늘 죽음 앞에 서야하는 불안하고 의존적인 인간의 모습을 응시하고, 전란 속에서도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면을 확인하는 등 전쟁을 중심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인간을 재발견하게 된다.
즉 ‘호구일록’은 우리에게 전쟁이란 재난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국가의 존재를 되묻게 하며, 국가를 대신하여 백성을 보호해야 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대부를 목도하도록 하고, 삶을 스스로 지켜내고자 숨가쁘게 도망치는 백성의 고난함과 그 속에서 서로 부등켜 안고 있는 가족을 주목하게 한다. 
전근대시대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 공동체의 기본이었고, 때문에 가족 중심적 사고와 생활이 삶의 전반을 지배했다. 현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가족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공동체가 존재의 기반으로 작동했다. 가족이 중심이 되는 건 여기에 기반한다. 
현대에 있어서도 가족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 양상을 수렴한 형태의 다양한 가족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것을 사회가 폭넓게 인정해 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는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 사회는 개인의 욕구와 욕망이 다양해짐에 따라 개별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사고와 인식의 변화가 법과 제도로 수정, 정비된 결과로 이해됨직 하다. 개별 인권의 가치가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할 정도라면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코로나19로 인해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무차별적 재난 앞에서 특정 집단이 외치는 목소리와 행동은 공동체의 위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받아들이고 싶은 미래’ 공동체 역량에 달려

정부 당국이 철저한 방역을 통해 공동체 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것과 함께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 또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다양한 욕구와 행동이 혼재하고 목소리가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에게 개인적 자유와 선택을 강제하기는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되기도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때문에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자는 희생과 배려, 헌신의 가치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어느 한쪽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점이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은 어느 정도 비판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정 집단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을 보면 공동체란 언어가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코로나19는 우리로 하여금 나를 둘러싼 가족 그리고 공동체, 국가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만든다. 이는 물론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나 앞으로 내 앞에 그리고 공동체 앞에 닥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선 지금 시점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견하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미래를 꿈꿀 수는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낯설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 혼자만이 이룰 수 없고 누릴 수 없다. 공동체가 응집되어 역동적으로 뿜어져 나올 때 가능한 것이며,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량이다.  한의숭(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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